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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아침마다 잠에서 깨는 일에 적잖은 에너지를 소모해 왔습니다. 그땐 왜 그리도 피곤했던지, 모닝콜이 몇 번이나 소리쳐야 겨우 몸을 일으키곤 했었습니다. 출근해서 처리해야 할 일들이 쌓여 있는 날이면, 애꿎은 알람소리에 화풀이를 하기도 했었지요. 싫지만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모닝콜과 직장인의 엇갈린 관계는 숙명인가 봅니다.
모닝콜, 그 적과의 동침
스마트폰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각양각색의 자명종 시계들이 우리의 아침을 책임졌습니다. ‘따르릉따르릉’ 우렁차게 울리던 기본 스타일의 탁상시계 외에도 일어나라며 외쳐대는 재미난 멘트를 삽입한 시계들이 나오기도 했고, 독특한 디자인으로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레트로’라는 감성을 앞세워 다시 자명종 시계들이 유행하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무엇이 되었건 단잠을 깨우는 모닝콜의 소리는 친해질 수 없는 적과의 동침일 뿐입니다. 듣기 싫지만 의지하지 않으면 불안하니까 기댈 수밖에 없는 나의 연약함을 탓할 수 밖에 없지요. 내일 아침엔 좀 더 다정하게 깨워주길 바라며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나 유행하는 가수의 노래로 바꾸어가며 조심스럽게 세팅하기도 했었지만 그 역시 모닝콜일 뿐인지라 어렵게 선정한 그 음악 역시 최악의 선곡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시절의 아침
젊은 시절의 아침이라서 그랬을까요. 아침시간의 5분이 낮의 50분 보다 소중하다고 주장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밤늦게 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던 그 젊은 날의 아침도 힘들었지만, 역시 가장 힘들었던 때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직장생활과 함께 고군분투했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는 일은 단순하게 ‘맡기고’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전처리가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아침의 5분이 그렇게도 소중했었나 봅니다.
매일 아침 서둘러 출근해도 항상 먼저 와서 자리를 지키며 매서운 눈초리를 날리던 팀장, 부서장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었습니다. 한결같이 일찍 출근하고 퇴근시간이 되어도 자리에서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던 그분들의 가정생활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하기도 했었지요. 철없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한때 ‘아침형 인간’이라는 트렌드가 유행한 적이 있습니다. 늦잠을 자면 세상에 뒤처져 루저로 밀려날 것 같은 두려움을 갖게 하는 말이었지요. 아침시간을 제대로 보내는 방법에 대한 책들도 쏟아졌습니다. 그런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마다 스스로를 다잡으며 '아침 일찍 일어나기'를 실천하려 노력했던 생각이 납니다. 물론 작심삼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요. 그럴 때마다 어제는 바쁘게 일했으니 오늘의 나를 용서하자며 스스로를 위로하는 식이었지요.
늦잠이 필요해
생각해 보면 주말에도 늦잠을 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어릴 적부터 가족은 다 함께 아침식사를 해야 된다는 아버지의 지론에 따라 일요일 아침에도 ‘피곤하면 밥 먹고 다시 자라.’는 엄마의 목소리를 거역하지 못했었습니다. 밥 먹고 나서 다시 잠이 올 리가 만무하고 더구나 일요일인데 나가서 신나게 놀아야지요. 그렇게 훈련된 덕분인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고 부모님을 떠나서도 일요일 아침에 늦잠 자는 가족을 방해하지 않으려 혼자서 공원이나 학교 운동장을 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마음과 다르게 나의 몸은 지쳐가고 있었나 봅니다. 나이와 잠의 상관관계를 따지지 않고 싶지만, 어느 주말에 의도치 않게 늦잠을 잤는데 몸이 훨씬 가벼워진 것을 느꼈습니다. 그 후로주중에 소모해 버린 기력을 회복하기 위해 평소 출근 날에 비해 두어 시간이라도 더 자기로 했습니다.
뒤늦은 깨달음과 함께 주말만큼은 죄책감 없이 나를 쉬게 해 주자는 생각으로, 일이 없는 주말의 하루 정도는 침대에서 뒹구는 나를 인정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주말의 일탈은 원기 충전의 기회가 되었고 주중 5일을 무난하게 살아낼 수 있는 나만의 '시크릿 에너지원'이 되었습니다.
아침이라는 행복
퇴직 이후,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에 대해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물어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자유로운 나의 하루, 특히 아침에 꾸역꾸역 일어나야 하는 직장인의 생활에서 벗어난 그 아침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나도 그랬으니까요.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일정한 시간에 일어납니다. 몸이 기억하는 시간이 있어서인지 자연스럽게 아침을 맞습니다. 예전보다 늦은 시간으로 모닝콜을 맞춰 놓았지만 그 지겨운 음악소리가 울리기 전에 먼저 일어나 알람을 해제합니다. 그 또한 쏠쏠한 재밋거리입니다. 그 지겨운 녀석을 이겼다는 성취감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거지요.
일어나는 시간보다 일어나서 아침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가 확연히 달라진 모습입니다. 정해진 시간에 직장에 가야 했던 그 시절에는 일어나자마자 욕실로 직행해 샤워로 잠을 깨우고 나를 정비한 다음 아침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후다닥 달려 나가기 바빴었지요.
그러나 지금의 아침은 온전히 나만의 시간입니다. 베란다에 나가 창밖을 내다볼 여유는 물론이고 잠옷차림으로 어슬렁거리며 커피부터 내립니다. 가끔은 지난밤에 읽다 던져놓은 책의 뒷장이 궁금해 먼저 확인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노트북을 펼쳐 생각나는 글을 적어보기도 하고 블로그를 확인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나만의 시간입니다.
오늘 반드시 무엇을 해야지라고 나를 채근하지 않습니다. 약속이 있다면 늦지 않게 잘 챙기고 그 외의 시간은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고 글을 쓰려고 합니다. 아직은 외부활동이 많은 백수 생활이라 바쁘지만 차츰 안정되면 좀 더 많은 시간을 그렇게 보낼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도 약속이 있어 나가면 바쁘게 지나갈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좋습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행복한 일이 또 있을까요. 나이 들어 좋은 점 중에 하나는 가기 싫은 자리 거절하고 만나기 싫은 사람을 억지도 대면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지금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재산입니다.
모닝콜을 생각하다가 이렇게 멀리까지 왔네요. 하늘이 흐리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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