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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글쓰기

퇴직 후 일상, 점심시간

여전히 초보 2024. 3. 18. 15:45

목차



    퇴직후 일상, 점심시간

     

    퇴직 이후 달라진 일상 중에 하나가 점심시간이다. 직장을 다닐 때는 점심시간이면 항상 우르르 몰려 구내식당을 가거나 주변 맛집을 탐닉하고 다녔었다.  '오늘점심, 뭐 먹을까'가 직장인의 행복한 고민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함께 모여 밥을 먹을 수 없었던 기간에도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이어졌고 여러 종류의 도시락들이 사무실로 배달되곤 했었다.

     

     

    직장인의 점심시간

    직장인의 점심시간

     

    퇴직을 준비하면서 그 곳의 모든 순간이 기억날 것 같지만 다 함께 어울리던 점심시간이 그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왜 그런 생각에까지 미쳤는지 알 수 없지만 마지막 일 년 동안 함께 지낸 직원들과의 점심시간이 나름 즐거웠었나 보다. 광화문 일대의 맛집을 찾아다니던 시간이 다시 못 올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땐 그랬지.

     

    퇴직 후에도 간간히 점심 약속이 잡혀 함께 일했던 직원들을 만난다. 직장인의 점심시간은 한 시간 남짓이라 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밥먹고 차 한잔하고 빠르게 헤어지는 것이 정해진 순서이다. 삼십여 년을 직장에서 보낸 나의 점심시간도 늘 바빴다. 정해진 시간을 지켜야 했고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눈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직장인의 점심시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장인에게 점심시간은 '위로'의 시간이다. 맛난 음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식사는 간단히 때우고 짧은 낮잠이나 휴식으로 에너지를 충전하기도 하고, 때로는 부족한 운동시간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햇살 좋은 날, 공원을 산책하며 좋은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는 것도 점심시간에 가능한 일이었다.

     

    퇴직 후의 변화

     

    가끔 퇴직한 선배들이나 한가한 친구들과 점심을 먹는다. 이런 경우의 점심시간은 한 시간으로 턱도 없다. 물론 시간을 제한해 두지도 않는다. 천천히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일상 대화를 나누지만 밥 먹는 시간 동안 마무리하기엔 너무 많은 할 말들이 남아서인지 식당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긴다. 때로는 의기투합해서 요즘 잘 나간가는 근교의 카페를 찾아 차로 이동하기까지  한다.

     

    퇴직후 일상 점심시간

     

    아직은 그렇게 자유로운 점심시간이 내겐 신세계를 만난듯 신기하다. 오랜 직장생활동안 몸에 밴 습성 때문에 점심시간이면 시간을 확인하는 습관이 남아있지만 금세 정신을 차린다. 그래 난 이제 백수야. 정해신 점심시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늦게 들어가 눈치를 봐야 할 상사도 없지.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이제 즐기라고 다독여본다.

     

    오랜만의 혼밥

     

    오늘은 혼자서 식당을 찾았다. 집에서의 혼밥은 일상이지만 식당을 혼자서 찾는 일은 좀처럼 없었는데 여행을 떠나기전에 제대로 밥 한 끼 먹자는 생각에 집 근처 식당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생각이 짧았다. 나의 몸이 기억하는 점심시간은 직장인의 점심시간이었다. 하는 수 없이 시간도 때울 겸 길게 산책에 나서 30분 정도를 더 보내고 식당을 결정했다.

     

    긴 여행에 그리울 수도 있는 한식을 먹자고 생각하다가 내가 찾은 식당은 감자탕집이었다. 마침 식당 맨 안쪽, 주방 가까이에 있는 창가자리가 비어 있었다. 테이블이 조금씩 비고 있는 시간이었던지라 혼자 앉아 먹는 4인 테이블이 눈치가 덜 보여 다행이었다. 입구 쪽을 등지고 앉으니 들어오는 손님을 신경 쓰지 않고 창가의 풍경을 보며 여유롭게 식사할 수 있는 자리였다.

     

    퇴직후 일상, 혼밥

     

    오랜만에 뼈해장국을 한 그릇 먹었다. 그렇게 맵지 않으면서 국물이 깊었고 큰 뼈가 두세 개 들어있어 한 끼 식사로 충분히 넉넉했다. 밥도 갓 지은 듯 고슬고슬하니 맛나서 탁월한 메뉴를 선택한 나를 칭찬하면서 식사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티슈로 입가를 닦으며 무심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냥 지나가도 될 에피소드

     

    그때, 반대편 건물 화장실에서 방금 주방에 있었던 사장님이 나오고 계셨다. 앞치마는 물론 손에 주방용 장갑도 그대로 낀 채 유유히 걸어나오는 남자분이 이 식당의 사장인지 종업원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조금 전에 서빙하는 모습을 봤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식당으로 들어왔으니 분명 같은 사람이다. 

     

    '사장님, 김치 좀 더 주세요.'

    손님이 소리치자, 바로 그 분이 테이블로 다가가 그 장갑 그대로 김치 그릇을 덥석 잡아들고 주방으로 향하는 거였다. 그분은 남자였고 화장실을 다녀왔다, 장갑을 낀 채로. '볼일 전에 장갑은 뺏을 수도 있겠지'라고 굳이 나를 설득해 보았다. 그리고 더 이상 생각을 넓히지 않기 위해 얼른 그곳을 나왔다. 그러나 끊고 싶어도 안 되는 것이 생각의 꼬리다. 

     

    예전 외국에서 잠시 제빵을 배운 적이 있었다. 그때 우리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위생을 매우 철저하게 강조하셨다. 주방에 들어가기 전에는 반드시 손을 씻고 주방용 옷으로 갈아입게 했으며 앞치마를 하고 절대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셨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식당을 이용할 때면 앞치마를 한 채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는 주방스태프들을 종종 만난다. 그 선생님이 계셨다면 집으로 쫓겨 갈 일이다. 

     

    그런데 앞치마에 주방용 장갑까지 착용한 채로 화장실을 다녀온다니,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지나가도 될 또 한 편의 에피소드이다.  나의 정신과 신체 건강을 위해  '오늘도 마무리는 코미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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